조, 수수를 중심으로 한 생산체계
조, 수수를 중심으로 한 생산체계
어렸을 적 시골에 가보면 밭에는 콩이 자라고 있고 그 주위에는 수수가 커가고 있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이를 주위작(둘레심기 : 포장의 주위에 포장내의 작물과 다른 작물들을 재배하는 것. 논두렁 콩 등이 대표적인 예임)이라 부른다. 이런 장면 뿐 아니라 콩을 심은 밭 중간 중간에 수수를 심는 간작(사이짓기 : 주가 되는 작물의 사이에 다른 종류의 작물을 심어 가꾸는 것)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현재는 기계화 및 농가 노동력의 고령화로 인하여 많이 볼 수 없지만 텃밭으로 이용하는 곳에서는 바람에 의한 도복이나 잡초의 경감이라는 효과를 보기 위하여 이용하기도 한다.
잡곡은 가뭄이나 풍수해 등으로 주작물의 파종기를 놓치게 되면 주작물을 대신하여 심고 재배하여 일반 국민들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구황작물로서의 역할이 대부분 이었다. 때문에 쌀 자급이 실현된 이후 재배면적이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현재 웰빙시대를 맞이하여 국민의 안전하고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잡곡류의 기능성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였고 이에 맞춰 수요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증가된 관심과 수요에 맞추어 공급이 충족되어야 잡곡의 발전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수요량에 비하여 공급량은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구황작물에서 기능성 작물로의 대국민 인식전환이 이루어 졌다는 데에 잡곡의 발전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잡곡류에는 메밀, 옥수수, 콩 등 벼 이외의 대부분의 작물이 속한다. 조나 수수와 같은 작물도 잡곡류에 속하는데, 조의 경우 수용성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하여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수수는 밀, 벼, 옥수수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중요한 작물로 인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사탕수수나 사료용 수수가 포함된다. 이 수수에는 작물에서는 드물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탄닌이 함유되어 있으며, 또한 페놀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인체내의 활성산소 제고 및 노화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조와 수수와 같은 잡곡류는 고온조건에서 생육이 촉진된다. 따라서 6월 중하순에 파종하여 10월 중하순에 수확하는, 벼와 비슷한 생육상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잡곡을 이용한 생산체계는 논에서 재배되고 있는 벼의 생산체계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논대체 작물로는 현재 이들이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원래가 반건조지대에 적응된 작물로서 건조에 대한 적응성은 뛰어나나 과습에는 약하기 때문이다. 논을 이용한 생산체계에 한계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밭에서의 체계를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조와 수수는 재배기간이 여름철이기 때문에 이른 봄이나 겨울철에 재배할 수 있는 작물과의 생산체계 조합을 이루어야 한다. 이른 봄과 겨울철에 재배 가능한 작물은 짧은 생육기간 또는 월동성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작물 선택에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농촌진흥청에서는 잡곡 경쟁력 향상 프로젝트나 논 소득기반 다양화 작부체계 시범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의 결과들이 정리되고 나면 보다 확실한 생산체계 조합들을 작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잡곡을 중심으로 한 예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른 봄(4월 초)에 메밀을 재배하고 난 후 조나 수수를 재배할 수 있다. 메밀, 조 그리고 수수는 모두 대파작물로서 이전부터 재배되어오던 작물이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기 때문에 작물생산체계에 있어 단기성 작물로 많이 이용이 된다. 현재는 메밀이 4월 초에 파종이 가능하다(중부 평지)고 실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2011년과 같이 따뜻한 기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3월 말, 즉 3월 20일 정도만 되어도 파종이 가능하다. 그러면 6월 중순 이전에 수확이 가능하고, 이어 조나 수수와 같은 잡곡의 재배를 위한 충분한 기간이 확보된다.
조나 수수가 6월 중순에 파종이 가능하다는 것은 수확 후 겨울작물을 파종 및 수확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도 포함이 된다. 조, 수수의 뒷그루 작물로 완두, 보리, 마늘 등이 가능하다. 완두는 고추의 연작장해를 회피하기 위하여 재배하기도 한다. 남부지방에서는 논재배의 경우 11월 중·하순에 파종을 하고, 밭재배의 경우는 가을무, 배추의 수확이 끝나는 12월 상순경에 파종을 하게 된다. 논밭재배 모두 5월 중·하순에 수확이 가능하다.
조와 수수는 보통 10월 초·중순경에 수확이 가능하므로 사료용인 청보리 등의 재배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청보리의 경우는 5월 중·하순에 청예용 사료로서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후 30일 가량의 생육기간을 확보하게 되면 종자용으로도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면 종자용 호밀 또는 보리와의 생산체계도 가능하다. 6월 중하순에 종자용 겨울작물을 수확하고 난 후, 조나 수수와 같은 잡곡류의 파종기를 충분히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도의 경우 6월 초·중순에 파종한 수수와 기장의 경우 출수하는 시기에 많은 강우와 바람으로 인하여 백수(쭉정이이삭 : 작물의 이삭이 하얀 쭉정이가 되는 현상)가 많이 발생하여 중부지역에서는 생육이 좋지 않아 파종기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식량의 생산을 위한 메밀-잡곡류 또는 봄감자-잡곡류, 조사료 및 식량자급률 향상을 위한 청보리-잡곡 등의 생산체계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질 조사료 자급률이 34%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의 자급을 위한 생산체계가 절실히 필요한 입장이다. 때문에 잡곡류 중에서도 수수와 겨울작물인 종실용 호밀과의 조합은 축산농가에서 충분히 적용해 볼 만한 체계일 것이다.
작물생산체계는 이용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가 있으므로 재배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선택이 가능하다. 식량 자급률 향상과 조사료 연중공급 등을 위한 작물생산체계는 우리나라의 곡물(식량)자급률을 높여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는 량을 줄이는데 의의가 있으며, 나아가 농가 생산성 향상을 통한 소득 증가라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료문의 :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전작과 농업연구사/농학박사 정광호
(031-290-6748)